[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원리]
지난 편에서는 제도권 자산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단점을 공략한 스테이블코인으로 과담보 스테이블코인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과담보 스테이블코인과는 다른 차별점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공략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란 온체인을 기반으로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가격 유지 메커니즘을 지향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 당시 화두가 됐던 USTC가 온체인 알고리즘 기반으로 1달러 가격 유지를 지향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입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그간 다뤘던 제도권 자산 기반 스테이블코인, 과담보 스테이블코인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구체적인 원리를 살펴보면 차이점을 알기 쉽습니다. 여러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웹3 생태계를 중심으로 이용자를 확보하고, 한때 전체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톱10 안에 진입을 하기도 했던 USTC를 중심으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원리를 짚어보겠습니다.
USTC는 테라 프로토콜이 발행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여기서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텐데요. 테라 프로토콜과 USTC의 관계는 거칠게 비유하면 미 연준(Fed)과 달러의 관계를 웹3식으로 바꾼 것과 같습니다. 미 연준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실업률 지표 등 다양한 거시경제 지표 추이를 보면서 통화정책을 통해 달러 공급을 조절하는 것처럼, 테라 프로토콜도 USTC의 1달러 가격이 유지되도록 가격이 변할 때마다 프로토콜이 자체적으로 USTC 공급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다만 테라는 중앙 기관이나 사람의 개입 없이 USTC 공급을 조절해 1달러 가격을 유지하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USTC의 구체적인 1달러 가격 유지 메커니즘은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USTC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으면 테라 프로토콜이 알고리즘에 따라 LUNC(옛 루나, 현 루나클래식)을 차익거래자한테 풀고 USTC를 매입합니다. 이때 차익거래자는 1달러 아래로 떨어진 USTC를 테라 프로토콜에 주고, 그 대가로 1달러어치의 LUNC를 받습니다. 테라 프로토콜은 이를 통해 시중에 있는 USTC의 공급량을 축소하여 1달러보다 떨어진 USTC 가치 상승을 도모합니다.
반대로 USTC의 가격이 1달러보다 위로 올라가면 테라 프로토콜이 알고리즘에 따라 USTC를 차익거래자한테 풀고 LUNC를 매입합니다. 이때 차익거래자는 1달러보다 위로 올라간 USTC를 테라 프로토콜로부터 받는 대신 1달러어치의 LUNC를 테라 프로토콜에 줍니다. 테라 프로토콜은 이를 통해 시중에 있는 USTC의 공급량을 늘려서 1달러보다 위로 올라간 USTC 가치 하락을 유도합니다. 이때 매입된 LUNC는 소각되면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 상승 압력이 생기게 되는데요. 이를 테라 알고리즘의 선순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USTC가 1달러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이 심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LUNC는 USTC의 1달러 가치 유지에 활용되는 것 외에도 스테이킹 보상이나 테라 체인에 대한 검증 보상에 쓰이는 토큰이기도 합니다. 곧, LUNC는 USTC의 담보 역할을 하는 토큰이며 LUNC의 장기적인 가치는 테라 생태계에서 얼마나 쓰이냐에 따라 결정됐습니다. 이는 LUNC의 실제 활용 가치 대비 USTC의 활용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스테이블코인이 담보물의 가치를 뛰어넘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테라 알고리즘이 선순환 구조일 때는 LUNC의 소각 등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시장의 유동성이 경색되고 가격 하방 압력이 계속되는 환경에서는 반대로 악순환이 일어나 담보물의 가치가 취약해지고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급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죽음의 소용돌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는 LUNC의 가격이 주춤하고 USTC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USTC풀의 유동성 경색이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시작됐습니다.
여기에 테라 기반의 디파이 서비스인 앵커 프로토콜에 USTC 자금이 지나치게 묶이면서 유동성 경색에 따른 USTC 디페깅(스테이블코인의 적정가가 깨지는 현상)이 더욱 강하게 발생했습니다. 실제로 앵커 프로토콜의 USTC 예치금은 USTC 시가총액이 고점을 찍었던 지난 5월 7일(한국시간) 기준으로 USTC 시가총액 대비 약 75%에 달했습니다. 시가총액의 75%에 달하는 자금이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디파이 프로토콜에 묶여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앵커 프로토콜에 USTC가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앵커 프로토콜이 약 20%의 고정 이율을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앵커 프로토콜의 이자율 알고리즘 구조상 스테이킹 된 LUNC(bLUNC, LUNC를 유동화한 토큰)의 가치가 UST 예치 가치보다 적어도 2배 이상은 많아야 약 20%의 고정 이율이 유지됩니다. 이때 bLUNC를 담보로 USTC를 대출하는 금액이 늘어나야 bLUNC의 수요가 늘면서 가치가 높아지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곧, 예치자와 예치규모보다 대출자와 대출규모가 늘어야 고금리 알고리듬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앵커 프로토콜 이용자의 목적은 USTC 예치를 통한 약 20%의 이자 보상에 있었습니다. 대출보다는 예치 상품 수요가 훨씬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대출보다 예치 수요가 지속적으로 높아서 알고리듬으로 정상적인 해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앵커 프로토콜은 준비금으로 보상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 준비금마저 다 떨어지면 약 20%의 이율 알고리즘을 깨거나 추가 자금을 수혈해야 합니다.
이때 테라는 추가 자금 수혈을 택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온 조직이 지난 1월 세워진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입니다. LFG는 설립 다음 달인 2월에 4억5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앵커 프로토콜 준비금으로 입금했습니다. 이어서 LFG는 USTC의 1달러 가치 유지를 위해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 준비금을 지속적으로 매입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테라는 지나친 USTC 수요 증가, 시장 유동성 경색, 아직까지도 종결되지 않은 여러 의혹 등을 결과적으로 버텨내지 못하면서 붕괴되고 맙니다.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5월10일 기준으로 LFG가 예치한 비트코인은 약 13억달러 상당이었지만, 이후 LFG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준비금을 외부로 출금했습니다. 준비금을 대부분 소진했는데도 테라·루나 사태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USTC로 대표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지속가능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기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한계를 넘고 더 나은 스테이블코인 체계가 갖춰지려면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요. 다음 편에서는 더 다양한 사례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장단점을 짚은 뒤에 최근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실험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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