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들어 미국 경기침체 공포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가상자산을 비롯한 위험자산이 일제히 폭락했습니다.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은 8월 5일 한때 5만달러가 붕괴되면서 하루새 약 20% 폭락했습니다. 이때 전체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약 16% 줄었습니다. 이날 폭락은 가상자산 시장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일본 등 주요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폭락했습니다. 특히 일본 닛케이지수는 이날 장중 4,400포인트 급락하면서 사상 최대 하락폭을 나타냈으며, 이어 저녁에 개장된 미국증시도 주요 지수가 하루 만에 3~4% 급락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현재 가상자산을 비롯한 위험자산 폭락으로 중동 지정학적 위기, 일본 엔화 강세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를 꼽고 있습니다.
시장의 이 우려는 한국시간 8월 2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지표에서 시작됐습니다. 노동부는 이날 7월 실업률이 4.3%를 나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월간 실업률이 이렇게 높게 나타난 것은 지난 2021년 이후 약 3년 만에 처음입니다. 노동부는 또 같은 날 7월 비농업고용지수가 11만 4,000명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 17만 6,000명을 크게 하회한 것입니다. 비농업고용지수는 농축산업 이외 분야의 고용 성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가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고용지표입니다. 그런데 이 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는 것은 미국 고용시장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간 고용지표가 적당히 나빠지는 것은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에는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고용지표가 악화되면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자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보다는 경기침체 공포가 더 커지면서 위험자산 가격이 급락한 것입니다. 이러한 공포를 반영하듯, 8월 5일 가상자산 선물시장 역시 하루만에 8억 10억달러 규모의 롱포지션이 청산됐습니다. 이는 지난 3월 이후 5개월 만의 롱포지션 최대 규모 청산입니다. 롱포지션이란 선물 계약 체결자가 미래에 자산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체결한 계약을 의미합니다. 즉, 가상자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롱포지션 계약을 체결한 투자자들이 갑작스러운 급락으로 투자금을 크게 잃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공포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상승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번 경기침체 우려로 금리 인하 가능성은 오히려 더 올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8월 6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연준 금리 정보사이트 페드워치를 보면, 투자자들은 연준이 오는 9월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75%로 보고 있으며, 또 0.25%포인트 인하 가능성은 24.5%로 봤습니다. 원래 경기침체 우려가 불거진 8월 2일 이전에는 연준이 9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이 더 높게 점쳐졌습니다. 그런데 경기침체 공포가 확산되자 연준이 9월에 금리를 0.5%포인트 이하로 크게 인하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이 강해진 것입니다. 큰 폭의 금리 인하는 결국 통화정책 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위험자산에는 호재로 작용합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상승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상자산 시장만의 악재도 2024년 4분기면 해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마운트곡스 채권자 매도 공포도 8월 들어서는 진정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마운트곡스 채권자 매도 공포란 2014년 파산한 가상자산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약 10년 만에 채권자들에게 대량의 비트코인을 상환한 데 따른 매도 우려를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은 마운트곡스의 상환 물량을 비트코인 약 14만개로 보고 있는데 채권자들이 이 물량을 매도하면 가격 폭락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공포가 확산된 것입니다. 실제로 마운트곡스가 지난 6월 상환을 시작한다고 발표하자 가상자산 가격이 일제히 급락했습니다. 그러나 7월 들어 마운트곡스가 실제로 물량을 상환한 뒤에도 채권자 매도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자 시장 공포가 상당 부분 해소됐습니다.
지나친 미결제약정이 이번 가격 폭락으로 해소된 것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결제약정이란 이용자가 체결한 선물 계약을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가상자산 가격이 상승할 때 미결제약정이 동시에 오르면 롱포지션을 유지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비트코인 미결제약정은 지난 7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적당한 미결제약정은 가격 상승에 도움이 되지만 수치가 지나치게 커지면 조금만 가격이 하락해도 청산이 발생하면서 평소보다 가격이 급락할 수 있습니다. 8월 폭락으로 미결제약정이 2월 수준으로 크게 줄었기 때문에 선물 시장에 의한 가격 급락은 당분간 일어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급변하는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 투자자들이 시장의 새로운 펀더멘탈을 찾아 투자전략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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