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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의 거래 검증 방식을 기존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는 머지(Merge) 업그레이드가 7년여의 여정 끝에 마무리됐지만, `이더리움2.0`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과 규제 리스크는 이제 첫 발을 내디딘 듯합니다.
역사적인 머지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자마자 미국 금융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장인 개리 겐슬러 위원장은 지분증명 방식으로 바뀐 이더리움을 증권(Securities)으로 간주해 연방증권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머지 업그레이드 완료 후 기자들과 만난 겐슬러 위원장은 "솔라나와 카르다노는 물론이고 이제 달라진 이더리움까지 지분증명으로 발행되는 가상자산에 투자할 경우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따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라며 "이 때문에 1930년대 미국 증권법이 만들어진 이래로 증권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이는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증권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SEC가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하위 테스트는 크게 4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째 돈이 투자되고(Investment of money), 둘째 그 돈이 공동의 사업에 쓰이게 되고(In a common enterprise), 셋째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With an expectation of profits), 넷째 그 이익은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된다(From the efforts of others)는 겁니다.
겐슬러 위원장도 이더리움을 포함해 지분증명 방식으로 발행되는 코인들에 대해 "이들 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결국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겐슬러 위원장의 판단대로 라면, 그동안 `작업증명 방식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만은 증권이 아니다`라고 했던 SEC의 공식적인 유권해석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실제 미국 내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업계 이익단체인 블록체인협회에서 정책부분 대표로 있는 제이크 체르빈스키도 겐슬러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지분증명은 비트코인의 작업증명에 대응되는 개념이고, 물론 이더리움을 예치(스테이킹)해 거래를 검증함으로써 이익을 얻기도 하지만, 이는 네트워크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그 역시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스테이킹으로 거래를 검증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 마치 주식시장에서의 배당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SEC가 정말로 이더리움을 기존 주식이나 채권, 펀드 등과 마찬가지로 증권의 한 종류로 판단할 경우 이더리움은 물론이고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여타 코인들, 이들을 상장시키고 거래하는 가상자산 거래소, 각종 탈중앙화금융(디파이·DeFi) 프로젝트들 모두가 SEC와 연방증권법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부분 지분증명 방식의 가상자산들이 멸종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가브리엘 샤피로 델파이디지털 대표의 우려는 결코 엄살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겁니다.
사실 이더리움의 머지 업그레이드가 주목 받았던 건, 에너지 소비량을 99% 이상 줄일 수 있는 친환경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한편 코인 발행량을 줄이면서도 블록 처리 속도를 높이고 수수료를 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더리움을 둘러싼 생태계를 활성화함으로써 투자자들의 참여를 늘리고 대규모 실물경제 도입(Mass Adoption)을 앞당기고자 하였으나, 업그레이드 직후부터 이 같은 규제 리스크가 커진다면 투자자들이나 기업들의 이더리움 채택은 규제 리스크 해소 이후까지 꽤 늦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울러 우려스러운 건, 이 같은 겐슬러 위원장의 발언이 그 다음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책임있는 디지털자산 통합 프레임워크` 행정명령과 맞물려 SEC가 디파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프레임워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글로벌 가상자산에 대한 정책 표준을 마련하고, 기업과 개인 등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상자산 규제, 북한을 비롯한 적성국들의 활동 자금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의심되는 디파이에 대한 위험성 평가 등 규제에 나서라고 각 정부부처에 지시했습니다.
물론 섣불리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겐슬러 위원장의 개인 차원의 발언과 구체성이 결여돼 있는 백악관의 큰 정책적 프레임 정도만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주요 국가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정책으로 투자 기반 자체가 약화돼 있는 가상자산 시장이, 당분간 규제 리스크로 인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합니다. SEC의 정책이 전세계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주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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