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의 코인 투자를 준비하는 월가]
작년 11월 7만달러 직전까지 갔던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 아래까지 추락하면서 이른바 `가상자산시장의 혹한기`(Crypto Winter)가 길어지고 있다. 특히 계속되는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저가에 싸게 코인을 사겠다는 신규 투자세력이 이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는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게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 2020년 중반부터 작년 말까지 이어졌던 가상자산시장의 대세 상승장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간 중 시중에 풀렸던 막대한 유동성이 이 시장으로 흘러 들어온 덕이 컸지만, 그 배후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대형 코인들에 투자를 본격화한 수익률에 목 말랐던 기관투자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기관투자가들의 가상자산 투자를 대비한 인프라 사업을 준비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앞으로 어떤 계기만 생기면 다시 기관투자가들이 이 가상자산에 본격 투자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거액의 운용자산을 굴리는 기관투자가들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해당 자산을 편리하게 사고 팔 수 있도록 매매거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특정한 자산에 투자할 때 이를 관리해주는 수탁(커스터디·Custody)이 있어야만 하는데, 최근 대형 금융사들이 이런 서비스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는 건, 실제 금융권에서 코인 투자에 관심을 내비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초 운용자산만 해도 8조5000억달러(원화 약 1경2100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자산운용업계의 공룡인 블랙록(BlackRock)이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와 손잡고, 수만 곳에 달하는 자기 회사 고객들에게 가상자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이 있었다.
기관투자가는 일반 개인투자자의 거래하는 시스템과 차별화하는 별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초단타 매매와 시스템 트레이딩, 각종 차익거래 등을 자신들이 원하는 거래를 편리하게 할 수 있는데, 이번 협력을 통해 블랙록은 자사 고객들이 접속하고 있는 전용 플랫폼인 `알라딘`과 코인베이스의 기관투자가 전용 거래시스템인 `코인베이스 프라임`을 연결시켜 매매주문부터 수탁, 프라임 브로커리지까지 종합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9월 말에는 미국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슈왑이 피델리티 디지털에셋과 시타델증권, 버튜 파이낸셜, 세콰이어캐피탈 등 월가 유명 금융회사들과 합작해 `더 빠르면서도, 더 안전한 거래`를 표방하면서 주로 기관투자가들을 겨냥한 새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EDX마켓(EDX Markets)을 출범했다. 특히 EDX마켓은 거래 수수료를 미국 주식 거래보다 낮은 수준으로 낮추면서 보안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규제 리스크를 피해 기관투자가 참여를 늘리기 위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몇몇 가상자산만 집중 거래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런 거래 시스템과 함께 수탁사업에 나서는 금융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탁은 자산을 맡아서 대신 관리해 준다는 뜻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코인을 투자할 때 해당 코인이 분실 또는 도난 당하지 않도록 이를 관리해주는 한편 매일매일 코인을 거래할 때 최종적인 거래 정산을 해주고 거래에 따른 투자 수익률을 관리해주는 종합적인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곁에서 지원해주는 수탁서비스가 없을 땐 펀드 매니저 혼자 이 일을 다 해낼 수 없어 투자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동안에는 코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제미니, 코인관련 사업자인 NYDIG, 파이어블록, 써클, 비트고 등이 주로 수탁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월가 기관투자가들이 선뜻 손을 잡기엔 여전히 영세한 편이었다. 물론 BNY멜론과 US뱅코프,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등 대형 은행들도 수탁사업 진출을 선언했지만, 아직 본격 서비스는 미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 2위 증권거래소인 나스닥이 나스닥 디지털에셋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코인에 투자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수탁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며 본격 경쟁을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수탁서비스 외에도 시장 내 유동성 공급 기능까지 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기관투자가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투자 인프라가 속속 갖춰지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의 규제 불확실성만 해소될 경우 기관들의 진입은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상자산 전문 운용사인 아폴로 캐피탈을 이끌고 있는 헨릭 앤더슨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최근 약세장으로 인해 기관투자가들의 가상자산 투자도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관들은 가상자산시장에 관심을 갖고 언제쯤 시장에 들어오는 게 좋을 지 그 시점을 가늠하고 있다"면서 "당분간은 가족 운용회사나 소규모 부띠크 운용사 정도가 시장에 진입하겠지만, 서서히 퇴직연금이나 연기금은 물론 대형 기관투자가들까지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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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부국장이데일리 글로벌마켓센터장